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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시 덕질] 문자가 없는 집시들은 어떻게 정보를 남겼을까?
    집시 이야기/집시 이야기 2019. 12. 24. 22:10

    호보(Hobo)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

    한국 위키에서는 호보를 "미국에서 화물 열차에 무임승차하여 각지를 이동하는 방랑자"라고 정의한다.

     

    이보다 더 정확하게 정의하자면 이주 노동자(Migrant Worker)를 뜻한다.

    한국에서는 외국인 노동자라는 단어가 더 친숙하겠다.

     

    그 중에서도 빈곤해서 일거리를 찾아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호보라고 부른다.

    한국 사전에서는 Hobo와 Tramp를 같은 단어로 정의하고 있지만,

    Hobo는 억지로 돌아다니면서 일하는 Tramp와 전혀 일을 하지 않는 Bum이랑은 다르다!

     

    왜 갑자기 호보 이야기를 꺼냈냐면 이들의 특별한 소통 방식 때문이다.

    호보들은 자신들끼리만 알아볼 수 있도록 벽에 사인을 남겼는데,

    이것을 호보 사인(Hobo Signs) 또는 호보 기호(Hobo Symbols)라고 한다.

     

    특정 인물끼리만 알아볼 수 있다는 특성때문에 호보 코드(Hobo Code)라 불리기도 하며

    미국의 국립 암호 박물관(National Cryptologic Museum)에도 소개되어있다.

     

    1870년대 켈리포니아, 벽에 사인을 남기는 호보의 모습

    역시 방랑하는 집시들도 이와 비슷한 방식을 사용했다.

    그러나, 대부분 유럽에 있는 집시들이 미국의 호보 기호를 사용했을리는 없고,

    평원이나 길 위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으니 사인을 남길 벽이 없는 환경이 더 많았다.

    그래서, 집시들은 나뭇잎과 나뭇가지를 이용해서 자신들만의 소통 상징을 만들었으니..

     

    그것을 파테란(Patteran)이라고 한다.

    형태를 보면 집시어 Patrin(나뭇잎)과 영어 Pattern(패턴)이 합쳐진 말인 듯하다.

    파테란이란 단어는 1892년에 발표된 Rudyard Kipling의 시,

    The Gipsy Trail에서 최초로 언급된다.

     

    여기저기 파테란의 존재에 대한 기록이 있긴하지만

    호보 사인처럼 제대로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는지 아쉽게도 정보를 찾을 수가 없다.

    아니면 암호로서 탄생했지만 이제는 세간에 전부 알려진 호보 사인과는 다르게

    아직까지도 암호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즉, 문자가 없어서 야만인이라고 손가락질 받는 집시들에겐 파테란이 있다.

    이에 대해서 한국의 mariamarx라는 분은 이런 평을 남겼다.

     

     나치 독일 시절에는 무려 50만 명이 넘는 동족을 가스실과 인체 실험실에서 잃었다(예나 지금이나 99.8 퍼센트의 가드조(집시가 아닌 타민족)들은 유대인 학살의 역사만 '교육'받는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로마니어를 버리지 않았다. 오늘날에 와서는 각각의 지역 언어와 뒤섞여버렸기 때문에 하나의 로마니어 단어에도 다양한 유사 발음과 방언의 형태로 존재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산스크리트어에 기원한 동일한 계통의 언어를 사용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토록 불가사이할 만큼 자신들만의 언어를 소중히 지켜왔지만 불행히도 집시에겐 문자가 없었다. 긴급한 상황이나 이동 경로의 표식을 남겨둘 때 사용했던 파테란 Patteran이라는 자연물 표기법(풀잎이나 나뭇가지 등을 이용한 메시지 전달기법)이 고도로 발달하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문자의 부재가 크게 불편하지 않았던 보다 중요한 이유는, 국가를 형성해 본 경험이 없었다는 점, 다시 말해 왕과 같은 절대 통치권자가 집시의 세계에서는 단 한번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강력한 중앙집권적 통치자가 등장하여 거대한 피라미드 또는 기념비를 세우면서 자신의 치적을 후대에 남기기 위한 미디어로 개발해낸 것이 바로 설형문자, 상형문자, 표의문자, 표음문자 들 아니었던가. 왕이 없으면 문자가 없고 문자가 없으면 역사도 없다.
    그러니 많은 서구인들이 집시=로마들에게 손가락질하며 "문자도 없고 역사도 없는 야만의 족속들"이라고 폄하하는 건 무엇을 잘못 알고하시는 말씀이다. 조금 전의 문장을 로마들의 입장에서 뒤집어 발음해 보면 이런 의미가 된다. 

    1) 단지 기록된 역사만 없을 뿐 민족의 정체성은 모든 집시들의 가슴에 고스란히 계승되어 왔다.

    2) 숲 속에서 생활하고 유랑의 길을 나설 때 우리들만의 표현 방식으로 충분히 소통해 왔다.
    책장에 박힌 깨알 같은 문자만 없었을 뿐이지 세상의 모든 숲과 길은 우리의 영토로 다스려 왔다.

    3) 우리는 왕의 신민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이 저마다의 높은 긍지를 지닌 Rom들의 집합=Roma이다.
    세습되는 왕권 치하의 납세자 신분을 거부하고 정주(定住) 대신 유랑을 스스로 선택하였고,
    부족(Vista)의 대표는 구성원 모두의 참여로 선출하는진정한 민주주의의 역사를 우리는 계승해 왔다. 

     너희는 단지 우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살았을 뿐이다. 그렇다.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그저 눈 앞에 보이는 것만으로, 좋게 보면 '숲 속의 요정 같은 사람들' 나쁘게 보면 '불결하고 불필요한 거지 민족'으로, 오해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요정도 아니고 거지도 아니다.

    [Romani Anthem] Gelem, Gelem 가사 번역 및 해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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